비수(淝水)는 회수의 지류이다. 회수(淮水)가 동백산(桐栢山)에서 흘러내려 동쪽으로 천리나 흘러서 그치지 않았고, 비수(淝水)가 그 옆에서 흘러 천리는 흐르지 못하고 백리 만에 회수에 합류한다. 기원383년, 당시 북방의 16국중에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苻坚)이 9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멸망시키고, 동진(東晋)의 사현(謝玄)은 8만의 군대를 이끌고 비수(淝水)에서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의 100만대군을 격파했다. 이것이 중국역사상 유명한 비수지전 이다. 마침내 10월, 부융이 이끄는 선봉군이 비수(淝水) 서쪽의 수양(壽陽)을 점령하여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모용수도 운성(鄖城)을 점령하여 환충을 압박했다. 전연(前燕) 최후의 황제인 모용위(慕容暐)의 아우 홍(泓)은 전연이 멸망한 후 전진(前秦)에 복속하였으나 비수(淝水)의 싸움에서 전진이 동진에게 패하자, 선비(鮮卑)와 규합하여 전진의 도읍 장안(長安)을 공격하여 멸하였다.
비수(淝水)는 회수의 지류이다. 회수(淮水)가 동백산(桐栢山)에서 흘러내려 동쪽으로 천리나 흘러서 그치지 않았고, 비수(淝水)가 그 옆에서 흘러 천리는 흐르지 못하고 백리 만에 회수에 합류한다. 기원383년, 당시 북방의 16국중에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苻坚)이 9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멸망시키고, 동진(東晋)의 사현(謝玄)은 8만의 군대를 이끌고 비수(淝水)에서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의 100만대군을 격파했다. 이것이 중국역사상 유명한 비수지전 이다. 마침내 10월, 부융이 이끄는 선봉군이 비수(淝水) 서쪽의 수양(壽陽)을 점령하여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모용수도 운성(鄖城)을 점령하여 환충을 압박했다. 전연(前燕) 최후의 황제인 모용위(慕容暐)의 아우 홍(泓)은 전연이 멸망한 후 전진(前秦)에 복속하였으나 비수(淝水)의 싸움에서 전진이 동진에게 패하자, 선비(鮮卑)와 규합하여 전진의 도읍 장안(長安)을 공격하여 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