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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도왕은 초나라의 군주이다. 기원전 400년 삼진(三晋)이 협력하여 초나라를 공격, 승구(乘丘)까지 진격했다고 돌아갔다. 승구는 지금의 산동성 거야현(巨野縣) 서남이다. 기원전 398년 초나라가 정나라에 쳐들어와 신정을 포위했다. 위문후 때, 자주 정(鄭)나라와 송(宋)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와 초나라는 이익 충돌이 발생한다. 그러나 초나라 군대가 연속하여 패배했다. 위무후 5년(기원전 391년) 위문후로부터 축적된 강대한 국력을 물려받은 위나라는 삼진연합군을 이끌고, 초나라 군대를 대량(大梁), 유관(楡關)에서 패배시키고, 양릉을 차지한다. 초나라의 조야는 공포에 휩싸인다. 초도왕은 연속하여 사신을 파견하여 강화를 요청한다. 초나라가 뇌물을 바쳐 진나라에 뇌물을 바치자 진나라가 한나라의 의양(宜陽)을 공격했다. 위무후 20년(기원전 374년) 위나라는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초나라 군대를 다시 유관에서 격파한다. 초나라가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도는 이렇게 저지 당한다. 분류:초나라의 군주 분류:오자 분류: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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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도왕은 초나라의 군주이다. 기원전 400년 삼진(三晋)이 협력하여 초나라를 공격, 승구(乘丘)까지 진격했다고 돌아갔다. 승구는 지금의 산동성 거야현(巨野縣) 서남이다. 기원전 398년 초나라가 정나라에 쳐들어와 신정을 포위했다. 위문후 때, 자주 정(鄭)나라와 송(宋)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와 초나라는 이익 충돌이 발생한다. 그러나 초나라 군대가 연속하여 패배했다. 위무후 5년(기원전 391년) 위문후로부터 축적된 강대한 국력을 물려받은 위나라는 삼진연합군을 이끌고, 초나라 군대를 대량(大梁), 유관(楡關)에서 패배시키고, 양릉을 차지한다. 초나라의 조야는 공포에 휩싸인다. 초도왕은 연속하여 사신을 파견하여 강화를 요청한다. 초나라가 뇌물을 바쳐 진나라에 뇌물을 바치자 진나라가 한나라의 의양(宜陽)을 공격했다. 기원전 390년 위나라의 오기(吳起)가 대신들의 모함을 받자 초나라로 달아났다. 오기는 위나라에서도 이름을 또 날리지만 그는 결국 승상에 자리까지 못오른다. 이에 오기는 불만을 품고 초나라로 건너가 초도왕의 비호하에 여기서도 승승장구한다. 오기는 진나라를 쳐서 5개의 성을 빼앗고 초나라로 떠난다. 초도왕은 오기에게 재상의 자리를 내준다. 초도왕은 오기를 영윤(令尹)으로 삼아 나라의 모든 살림을 맡겼다. 영윤은 곧 재상이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무리들이 있었다. 그가 훈련을 시키니 막강한 정병으로 양성되어 이웃 제후국들이 감히 초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초나라의 세족들은 오기(吳起)가 초도왕(楚悼王)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자 커다란 불만을 품었다. 공족들과 세족들의 권리와 지위가 대폭 축소되는 등 불만이 쏟아지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초도왕이 훙거하자 국상을 틈타 초나라의 공적, 세족, 관료들이 오기를 암살하게 된다. 기원전 381년 초도왕이 죽고 그 아들 숙왕(肅王) 장(臧)이 섰다. 도오왕은 오기(吳起)를 초나라의 영윤에 등용하여 각 지방에 봉해진 귀족들과 그 자제들 중 삼 세 이상되는 사람들의 봉지를 몰수하고 불요불급한 관직을 없애버린 다음 그 비용으로 정병을 양성했다. 귀족들과 그 종족들에게 명을 내려 초나라의 빈 땅으로 옮겨가 살게 하고 그 강역을 양월(楊越)과 창오(蒼梧)로까지 확대했다. 도왕이 죽고 태자 장이 서자 귀족들이 들고일어나 오기를 죽이기 위해 궁궐로 난입했다. 오기는 도망가다가 도왕의 시신 위에 엎드렸다. 귀족들이 오기의 몸을 향해 화살을 수없이 날려 살해하는 과정에 화살이 도왕의 시신에도 꽂혔다. 숙왕은 70여 가에 달하는 귀족들에게 반역죄를 물어 멸족시킴으로써 초나라의 국정은 쇄신되었다. 위무후 20년(기원전 374년) 위나라는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초나라 군대를 다시 유관에서 격파한다. 초나라가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도는 이렇게 저지 당한다. 분류:초나라의 군주 분류:오자 분류: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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