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왕(三秦王) 관중지방 인근에서 일어난 왕이다. 세상 사람들은 진나라 장수 출신들로 진나라의 자제를 여러 해 거느렸던 장함·사마흔·동예를 가리켜 삼진왕(三秦王)이라 부르고 있었다. 삼진왕(三秦王)은 팽성으로 이동한 항우를 대신해 관중지역을 다스렸다. 그에게 어느날 초(楚)의 승상 범증으로부터 유방에 관한 경고장이 날아온다. 349년, 후조의 황제 석호 (石虎)가 죽자 포홍은 사방에서 군사들이 일어나자 무리 10만 명을 모아 스스로 대장군·대선우(大單于)·삼진왕(三秦王)이라 부르면서 성을 부(苻)씨로 고친 뒤 전진을 세웠다. 전진, 후진간의 전투의 결과 요익중의 강족은 3만 여 명의 병력을 잃고 패주하였으며, 경쟁에서 승리한 포홍은 삼진왕(三秦王)을 자칭하면서 입관(入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였다. 황하 연안에서 할거 중이던 포홍은 성을 부씨(苻氏)로 바꾸고 삼진왕(三秦王)을 자칭하였다. 진(秦)이 성립된 것이다. 부홍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관중을 점거하려고 하였으나 부하에게... 부홍이 죽자 부건이 뒤를 이었다. 부건은 관중(關中)을 지배하던 두홍(杜洪)을 방심시키기 위해 삼진왕(三秦王)의 칭호를 버리고 동진(東晉)의 관작을 받았으며 주둔지에서 보리를 파종하였다. 분류:진나라
삼진왕(三秦王) 관중지방 인근에서 일어난 왕이다. 세상 사람들은 진나라 장수 출신들로 진나라의 자제를 여러 해 거느렸던 장함·사마흔·동예를 가리켜 삼진왕(三秦王)이라 부르고 있었다. 삼진왕(三秦王)은 팽성으로 이동한 항우를 대신해 관중지역을 다스렸다. 그에게 어느날 초(楚)의 승상 범증으로부터 유방에 관한 경고장이 날아온다. 349년, 후조의 황제 석호 (石虎)가 죽자 포홍은 사방에서 군사들이 일어나자 무리 10만 명을 모아 스스로 대장군·대선우(大單于)·삼진왕(三秦王)이라 부르면서 성을 부(苻)씨로 고친 뒤 전진을 세웠다. 전진, 후진간의 전투의 결과 요익중의 강족은 3만 여 명의 병력을 잃고 패주하였으며, 경쟁에서 승리한 포홍은 삼진왕(三秦王)을 자칭하면서 입관(入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였다. 황하 연안에서 할거 중이던 포홍은 성을 부씨(苻氏)로 바꾸고 삼진왕(三秦王)을 자칭하였다. 진(秦)이 성립된 것이다. 부홍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관중을 점거하려고 하였으나 부하에게... 부홍이 죽자 부건이 뒤를 이었다. 부건은 관중(關中)을 지배하던 두홍(杜洪)을 방심시키기 위해 삼진왕(三秦王)의 칭호를 버리고 동진(東晉)의 관작을 받았으며 주둔지에서 보리를 파종하였다. 분류: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