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용(李克用, 856년~908년)은 중국 당나라 말기 돌궐계 사타족(沙陀族) 출신의 최대 군벌이자 군사지도자이다. 후당의 건국자 이존욱은 그의 아들이며, 그에 의해 태조(太祖) 무제(武帝)라 추증받았다. 눈 한 쪽을 일허 독안룡(獨眼龍)으로도 불렸다. 후당(後唐)의 태조. 주사적심(朱邪赤心)의 아들이다. '애꾸미르'(애꾸눈 용)는 당나라 말기 이극용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당당했던 당나라도 끝 무렵에는 쇠약해져서 힘을 잃고 큰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당나라 말기에 이극용(李克用, 856∼908)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기에 그의 명성과 충성심은 모든 백성의 귀감이 되었고, 그에 대한 소문도 널리 퍼져나갔다. 그의 병사들은 정예병이었으므로 황소의 병사들은 여지없이 격파되었다. 또한 이극용이 이끄는 병사들은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아군(鴉軍)’이라 불리웠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감숙성(甘肅省)]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852~912,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귀순한 뒤 황소 토멸에 공을 세워 동평군왕에 책봉되었다.
이극용(李克用, 856년~908년)은 중국 당나라 말기 돌궐계 사타족(沙陀族) 출신의 최대 군벌이자 군사지도자이다. 후당의 건국자 이존욱은 그의 아들이며, 그에 의해 태조(太祖) 무제(武帝)라 추증받았다. 눈 한 쪽을 일허 독안룡(獨眼龍)으로도 불렸다. 후당(後唐)의 태조. 주사적심(朱邪赤心)의 아들이다. '애꾸미르'(애꾸눈 용)는 당나라 말기 이극용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당당했던 당나라도 끝 무렵에는 쇠약해져서 힘을 잃고 큰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당나라 말기에 이극용(李克用, 856∼908)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기에 그의 명성과 충성심은 모든 백성의 귀감이 되었고, 그에 대한 소문도 널리 퍼져나갔다. 그의 병사들은 정예병이었으므로 황소의 병사들은 여지없이 격파되었다. 또한 이극용이 이끄는 병사들은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아군(鴉軍)’이라 불리웠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감숙성(甘肅省)]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852~912,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귀순한 뒤 황소 토멸에 공을 세워 동평군왕에 책봉되었다. 당나라는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고, 그 후 장안을 중심으로 관중 지역을 지배한 일개 지방정권으로 추락하여 주전충 과 이극용 등 절도사 세력이 함께 존재하는 난립 상태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할거 세력을 형성한 가장 강대한 자는 하동 절도사 이극용(李克用)과 선무(宣武,하남 개봉의 통치 구역)절도사 주온(朱溫)이었다. 분류:후당 분류:목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