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사(阿羅斯)는 18세 마한이였다. 아루가 죽고 무오년에 동생 아라사(37년간 재위)가 즉위하였다. 첫해가 무오(戊午,5875-BC1323)년이다. 고등이 모반을 일으켜 개성에 웅거하였다. 마한의 비왕 아라사는 드디어 군대를 일으켜 고등을 토벌하려 하였다. 홍석령(紅石嶺)의 경계 지점에 이르렀을 때 진한의 태왕께서 고등을 용서하고, 우현왕으로 삼았다. 기원전 1286년에 21대 소태 단군은 해성의 욕살 서우여에게 단군자리를 선양하려 하였으며, 이에 서우여를 살수(薩水)에 봉하여 섭주(攝主)로 하여 기수(奇首)라 불렀다.
아라사(阿羅斯)는 18세 마한이였다. 아루가 죽고 무오년에 동생 아라사(37년간 재위)가 즉위하였다. 첫해가 무오(戊午,5875-BC1323)년이다. 고등이 모반을 일으켜 개성에 웅거하였다. 마한의 비왕 아라사는 드디어 군대를 일으켜 고등을 토벌하려 하였다. 홍석령(紅石嶺)의 경계 지점에 이르렀을 때 진한의 태왕께서 고등을 용서하고, 우현왕으로 삼았다. 기원전 1286년에 21대 소태 단군은 해성의 욕살 서우여에게 단군자리를 선양하려 하였으며, 이에 서우여를 살수(薩水)에 봉하여 섭주(攝主)로 하여 기수(奇首)라 불렀다. 우현왕 색불루가 소태 단군에게 간하여 중지케 하였으나 듣지 않았으며, 또한 마한 아라사도 불가함을 주장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서기전1286년에 색불루가 부여에서 단군에 즉위하였으며, 이때 마한 아라사는 군사를 정돈하여 색불루의 군사와 해성에서 싸웠으나 패전하여 돌아오지 못하였다. 소태 단군은 어쩔 수 없이 옥책과 국보를 색불루에게 전하고 서우여를 폐하여 일반인이 되게 하였다. 이에 서우여는 몰래 좌원에서 군대를 일으켰고 개천령이 토벌하러 갔으나 개천련이 전사하였다. 이리하여 서기전1285년 색불루 단군은 몸소 토벌하러 갔다가 서우여를 회유하는데 성공하여 번한으로 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