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왕 (景德王 ~765)은 신라 제35대 왕(742~765 재위)이였다. 이름은 김헌영(金憲英). 성덕왕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이다. 형 효성왕에게 아들이 없어 태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강대해진 귀족세력을 견제하고 전제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정치개혁을 시도했으며, 불교중흥에 힘쓰는 등 신라문화의 절정기를 맞게 했다. 중앙 행정 감찰 기구인 司正府가 경덕왕 4년에 설치되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우리나라 고전미술이 완성된 시기였다. 불국사·석굴암·에밀레종 등 건축·조각·공예 모든 분야가 발전하였다.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의 한화정책은 재위 6년인 747년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가 신라의 지명들을 한문식으로 바꾼 다음, 중국의 관호를 채용하여 관청과 관직의 명칭을 개칭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만에 오악삼산의 신들이 간혹 모습을 나타내어 대궐의 뜰에서 왕을 모시었다.
경덕왕 (景德王 ~765)은 신라 제35대 왕(742~765 재위)이였다. 이름은 김헌영(金憲英). 성덕왕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이다. 형 효성왕에게 아들이 없어 태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강대해진 귀족세력을 견제하고 전제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정치개혁을 시도했으며, 불교중흥에 힘쓰는 등 신라문화의 절정기를 맞게 했다. 중앙 행정 감찰 기구인 司正府가 경덕왕 4년에 설치되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우리나라 고전미술이 완성된 시기였다. 불국사·석굴암·에밀레종 등 건축·조각·공예 모든 분야가 발전하였다.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의 한화정책은 재위 6년인 747년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가 신라의 지명들을 한문식으로 바꾼 다음, 중국의 관호를 채용하여 관청과 관직의 명칭을 개칭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만에 오악삼산의 신들이 간혹 모습을 나타내어 대궐의 뜰에서 왕을 모시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성덕대왕 신종이 대표적인데 경덕왕 아들 이 만들었다. 에밀레종이라구도 하며 경덕왕이 선왕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기억되는데 자신이 왕에 있을 때 만들지 못하고, 그 아들인 혜공왕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