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MolotovRibbentropStalin.jpg|200px|right|thumb|조약문에 서명하고 있는 소련 외무상 몰로토프. 서 있는 사람 중 왼쪽에서 셋째가 리벤트로프, 넷째가 스탈린이다.]] 독소 불가침조약(獨소不可侵條約)은 1939년에 나치 독일과 소련이 상호불가침을 목적으로 조인한 조약이다. 그러나 이 조약은 2년 뒤인 1941년 냐치 독일의 사실상의 불가침조약 파기로 독소 전쟁이 벌어져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이 조약이 조인되었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를 증오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마르크스주의서적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독일공산당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국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무참히 탄압했고, 이로 인해 양국 간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년 뒤인 1941년 6월에 독소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이 조약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서부 유럽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활용한 카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림:MolotovRibbentropStalin.jpg|200px|right|thumb|조약문에 서명하고 있는 소련 외무상 몰로토프. 서 있는 사람 중 왼쪽에서 셋째가 리벤트로프, 넷째가 스탈린이다.]] 독소 불가침조약(獨소不可侵條約)은 1939년에 나치 독일과 소련이 상호불가침을 목적으로 조인한 조약이다. 그러나 이 조약은 2년 뒤인 1941년 냐치 독일의 사실상의 불가침조약 파기로 독소 전쟁이 벌어져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이 조약이 조인되었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를 증오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마르크스주의서적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독일공산당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국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무참히 탄압했고, 이로 인해 양국 간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년 뒤인 1941년 6월에 독소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이 조약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서부 유럽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활용한 카드에 불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