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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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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마랄(甘麻剌) 또는 카말라(1262년 ~ 1302년)는 원 현종(元顯宗)이다. 그는 원 진종이 추숭하였는데 시호는 광성인효황제(光聖仁孝皇帝) 휘는 패아지근감마랄(孛兒只斤甘麻剌)이었다. 그는 쿠빌라이의 친킴 태자와 코코진사이의 장남이었다. 1285년에는 친김 태자가 쿠빌라이보다 먼저 죽고 원나라에의해 최고의 권력과 재산이 있는 세력이 있는 황태자부의 관리 권한이 코코진이 받았다. 1292년 카말라는 진왕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동생 테무르와 다르마발라 그리고 그들의 아들 손자들과의 계승 경쟁에서 패하였다. 진왕은 고비사막 북쪽의 몽골을 소유하였고 징기스칸의 무덤이 오르도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1297년, 아리크 부케의 아들인 요부쿠르와 몽케의 손자 울루스 부카가 우구데이 칸국을 이탈하여 원나라로 귀환하였고 이로 인해 카이두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후 카이두는 지속적으로 원을 공격하였고 1298년에는 성종의 사위인 쾨르기즈를 생포하여 처형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1302년 카말라는 죽고 예순테무르가 진왕으로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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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마랄(甘麻剌) 또는 카말라(1262년 ~ 1302년)는 원 현종(元顯宗)이다. 그는 원 진종이 추숭하였는데 시호는 광성인효황제(光聖仁孝皇帝) 휘는 패아지근감마랄(孛兒只斤甘麻剌)이었다. 그는 쿠빌라이의 친킴 태자와 코코진사이의 장남이었다. 1285년에는 친김 태자가 쿠빌라이보다 먼저 죽고 원나라에의해 최고의 권력과 재산이 있는 세력이 있는 황태자부의 관리 권한이 코코진이 받았다. 1292년 카말라는 진왕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동생 테무르와 다르마발라 그리고 그들의 아들 손자들과의 계승 경쟁에서 패하였다. 진왕은 고비사막 북쪽의 몽골을 소유하였고 징기스칸의 무덤이 오르도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1297년, 아리크 부케의 아들인 요부쿠르와 몽케의 손자 울루스 부카가 우구데이 칸국을 이탈하여 원나라로 귀환하였고 이로 인해 카이두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후 카이두는 지속적으로 원을 공격하였고 1298년에는 성종의 사위인 쾨르기즈를 생포하여 처형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데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카이두는 1301년 아리크 부케의 차남 멜릭 테무르, 차가타이 칸국의 칸 두아와 함께 최대 규모의 원정에 나섰다. 전쟁 초기엔 카이두의 군대가 우세하여 가말라와 그의 아들 예순테무르 군대를 압도했지만 카이산의 군대가 전장으로 지원되면서 전황은 급속도로 변했다. 차가타이 칸국의 칸인 두아는 전투 중 부상을 당해 본국으로 퇴각했고 카이두는 전투 중 입은 부상 때문에 사망하고 말았다. 1302년 카말라는 죽고 예순테무르가 진왕으로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