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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龍城)은 연나라 전연, 북연의 수도였다. 중산에서 즉위한 모용준의 조부인 모용외가 요서 극성을 근거로해서 60년 부친 모용황이 용성으로 천도해서 17년 머문 후에 수도를 업도 로 옮긴 모용부는 준대에 이르러 대연국으로 화북에서 군림하는 황제가 되었다. 고구려는 국내성을 쌓고 가을 8월에 환도성으로 옮겨서 거처하였다. 겨울 10월에 연나라 왕 모용황이 용성으로 천도하였다. 모용황도 도읍을 용성으로 옮겨 고구려와의 일전에 대비했다. 모용황은 먼저 고구려를 항복시키고, 이어서 우문씨를 복속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중국 대륙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후연왕 모용수는 대방군왕 모용좌를 시켜 용성을 지키게 하였다. 따라서 고구려군이 요동으로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용좌가 사마학경을 시켜 이를 막도록 하였다. 모용수는 탁발규의 북위에 지속적으로 원군을 파견해 주는 등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용성에서는 모용농이 안정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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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龍城)은 연나라 전연, 북연의 수도였다. 중산에서 즉위한 모용준의 조부인 모용외가 요서 극성을 근거로해서 60년 부친 모용황이 용성으로 천도해서 17년 머문 후에 수도를 업도 로 옮긴 모용부는 준대에 이르러 대연국으로 화북에서 군림하는 황제가 되었다. 고구려는 국내성을 쌓고 가을 8월에 환도성으로 옮겨서 거처하였다. 겨울 10월에 연나라 왕 모용황이 용성으로 천도하였다. 모용황도 도읍을 용성으로 옮겨 고구려와의 일전에 대비했다. 모용황은 먼저 고구려를 항복시키고, 이어서 우문씨를 복속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중국 대륙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후연왕 모용수는 대방군왕 모용좌를 시켜 용성을 지키게 하였다. 따라서 고구려군이 요동으로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용좌가 사마학경을 시켜 이를 막도록 하였다. 모용수는 탁발규의 북위에 지속적으로 원군을 파견해 주는 등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용성에서는 모용농이 안정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다. 모용보는 모용린이 유주의 군대를 탈취할 것을 두려워하여 중산을 버리고 용성(龍城)으로 천도하였다. 용성으로 이동하던 도중 서장자 모용회(慕容會)의 군대를 만났다. 반란군이 모용보를 축출하고 용성(龍城)을 점령한 뒤에 내분을 일으키자 이를 기회로 반란군을 일소하고 태자 모용책(慕容策)을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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