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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대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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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朝鮮의 王妃)는 조선 시대 국왕의 정실 부인(正宮)으로서 중궁(中宮)의 자리에 있던 사람을 말한다. 흔히 중전(中殿, 중궁전의 준말)이라고 하며 이외에도 국모(國母), 내전(內殿), 곤전(坤殿), 곤위(壼位), 곤극(壼極), 성녀(聖女) 등의 여러 이칭이 있다. 왕비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었는데, 일반적으로는 국가에서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간택 절차를 거쳐 세자빈에 책봉되면 훗날 세자인 남편이 왕위에 올라 자신도 왕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세자빈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왕비로 책봉된 이도 있었고,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왕자의 부인이었던 이가 남편이 왕위에 오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왕비가 된 경우가 있었다. 그 밖에도 원래의 왕비가 쫓겨나거나 사망하여 후궁이 왕비에 책봉된 예도 있다. 신분상으로는 숙종의 왕비였던 희빈 장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양반가의 출신이다. 왕비의 존칭은 왕과 동등하게 전하(殿下)이며, 품계는 없다. 침전은 경복궁의 경우 교태전(交泰殿), 창덕궁의 경우 대조전(大造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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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朝鮮의 王妃)는 조선 시대 국왕의 정실 부인(正宮)으로서 중궁(中宮)의 자리에 있던 사람을 말한다. 흔히 중전(中殿, 중궁전의 준말)이라고 하며 이외에도 국모(國母), 내전(內殿), 곤전(坤殿), 곤위(壼位), 곤극(壼極), 성녀(聖女) 등의 여러 이칭이 있다. 왕비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었는데, 일반적으로는 국가에서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간택 절차를 거쳐 세자빈에 책봉되면 훗날 세자인 남편이 왕위에 올라 자신도 왕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세자빈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왕비로 책봉된 이도 있었고,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왕자의 부인이었던 이가 남편이 왕위에 오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왕비가 된 경우가 있었다. 그 밖에도 원래의 왕비가 쫓겨나거나 사망하여 후궁이 왕비에 책봉된 예도 있다. 신분상으로는 숙종의 왕비였던 희빈 장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양반가의 출신이다. 왕비의 존칭은 왕과 동등하게 전하(殿下)이며, 품계는 없다. 침전은 경복궁의 경우 교태전(交泰殿), 창덕궁의 경우 대조전(大造殿)이다. 1894년(고종 31년) 갑오경장 때 청나라에 대한 사대의 예를 폐지하고 왕실의 의례를 독립국의 격으로 격상하면서 왕비와 대비를 각각 왕후와 왕태후로 격상하고 그 존칭은 폐하(陛下)라 하였다. 이어 1897년(고종 34년, 광무 원년)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대군주가 황제로 격상되자 왕후 역시 황후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1899년(고종 36년, 광무 3년)에 태조와 장조, 정조가, 1908년에 진종, 헌종, 철종 등의 왕들이 황제로 추존되면서 그 왕비들에게도 황후의 시호가 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