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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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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전조의 수도였다. 황건적 토벌에 공이 있던 강거 선우의 아들 어부라는 화북에서 전전하고 있음을 기회로 휘하 수천기를 이끌고 산서 남부 평양을 본거지로 삼아 자립하였다. 그리하여 흉노는 산서 흉노부와 오르도스 흉노부로 분열 하게 되었다. 산서 흉노부는 분수 유역의 평양과 태원 일대를 점거해서 정착 목축 생활을 시작했다. 전조의 3대 황제 유총은 서진의 두 황제를 죽이고도 신세는 가련했다. 유총은 아직 통일이 달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흉악함과 음탕함을 드러낸다. 궁중에는 정식 황후만 다섯에, 희첩은 1만 명이 넘었다. 몇 달씩 아예 조회를 열지도 않고 신하들과 만나는 것도 거절해으며, 그저 궁전을 짓고 미녀들만 모았다. 동생 유의를 반역으로 몰아 수없는 고급 간부들을 눈알을 후벼내는 등의 혹형으로 죽였다. 수도 평양은 거의 비게 되었으나, 318에는 유총이 죽었다. 아들 유찬이 뒤를 이었으나, 이 자는 아비보다 한 술 더 떠서 즉위하자마자 그날 밤, 자신의 계모에 해당되는 아직 스물도 안 된 황태후(아비 유총의 다섯 황후 중 하나)를 범하고 그와 밤낮으로 놀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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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전조의 수도였다. 황건적 토벌에 공이 있던 강거 선우의 아들 어부라는 화북에서 전전하고 있음을 기회로 휘하 수천기를 이끌고 산서 남부 평양을 본거지로 삼아 자립하였다. 그리하여 흉노는 산서 흉노부와 오르도스 흉노부로 분열 하게 되었다. 산서 흉노부는 분수 유역의 평양과 태원 일대를 점거해서 정착 목축 생활을 시작했다. 전조의 3대 황제 유총은 서진의 두 황제를 죽이고도 신세는 가련했다. 유총은 아직 통일이 달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흉악함과 음탕함을 드러낸다. 궁중에는 정식 황후만 다섯에, 희첩은 1만 명이 넘었다. 몇 달씩 아예 조회를 열지도 않고 신하들과 만나는 것도 거절해으며, 그저 궁전을 짓고 미녀들만 모았다. 동생 유의를 반역으로 몰아 수없는 고급 간부들을 눈알을 후벼내는 등의 혹형으로 죽였다. 수도 평양은 거의 비게 되었으나, 318에는 유총이 죽었다. 아들 유찬이 뒤를 이었으나, 이 자는 아비보다 한 술 더 떠서 즉위하자마자 그날 밤, 자신의 계모에 해당되는 아직 스물도 안 된 황태후(아비 유총의 다섯 황후 중 하나)를 범하고 그와 밤낮으로 놀아난다. 이에 아버지의 장인이며 그의 장인인 재상 근준은 유찬을 죽이고, 유씨 황족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몰살시킨다. 그리고 벌써 죽은 유연과 유총을 포함한 모든 유씨 황족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불태운다. 양국에 주둔하던 석륵과 장안을 지키던 유총의 조카 유요는 각각 평양을 당해 진군해 평양을 점거하여 근준과 근씨 일가를 모조리 죽여버리고, 유씨 황족들이 몰살당했으니 평양은 황폐해져서 유요는 황제에 올라 장안으로 수도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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