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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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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 수몽(기원전 585-561년 재위)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 즉, 큰 아들 저번(諸樊), 둘째 여제(余祭), 여매(余昧), 막내 계찰(季札)이 그들이었다. 기원전 561년, 수몽은 중병에 걸렸다. 그는 임종 전에 네 아들을 불러, 장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던 제도를 바꾸어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계찰을 단호하게 사양하였다. 이에 수몽이 장자인 저번에게 말했다. “나는 왕위를 계찰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계찰이 옛 제도를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는구나. 그러니 네가 즉위한 후에라도 나의 유언을 잊지 않기 바란다.” 수몽이 죽자, 저번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두 동생 여제, 여매와 서약(誓約)을 하고, 이후 왕위를 형제들이 차례로 계승하고, 마지막으로 막내 동생 계찰에게 물려주기로 약속하였다. 저번이 죽은 후, 여제가 계승하였고, 여제가 죽자 왕위는 여매에게 넘어갔다. 계찰은 충성스럽게 형들의 정무(政務)를 도왔으므로, 그의 명성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계찰은 자신의 마음을 확고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자신의 봉지(封地)로 가서 은둔했다가, 여매의 아들 요(僚)가 즉위하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왕을 도와 정무를 처리하였다. 분류:오나라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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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 수몽(기원전 585-561년 재위)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 즉, 큰 아들 저번(諸樊), 둘째 여제(余祭), 여매(余昧), 막내 계찰(季札)이 그들이었다. 기원전 561년, 수몽은 중병에 걸렸다. 그는 임종 전에 네 아들을 불러, 장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던 제도를 바꾸어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계찰을 단호하게 사양하였다. 이에 수몽이 장자인 저번에게 말했다. “나는 왕위를 계찰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계찰이 옛 제도를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는구나. 그러니 네가 즉위한 후에라도 나의 유언을 잊지 않기 바란다.” 수몽이 죽자, 저번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두 동생 여제, 여매와 서약(誓約)을 하고, 이후 왕위를 형제들이 차례로 계승하고, 마지막으로 막내 동생 계찰에게 물려주기로 약속하였다. 저번이 죽은 후, 여제가 계승하였고, 여제가 죽자 왕위는 여매에게 넘어갔다. 계찰은 충성스럽게 형들의 정무(政務)를 도왔으므로, 그의 명성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부왕께서 세상을 뜨시기 전에, 저는 이미 왕위를 계승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사람은 바른 길을 걸어야하며, 인품을 고상하게 해야 합니다. 부귀영화란 저에게는 가을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富貴之于我, 如秋風之過耳),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계찰은 자신의 마음을 확고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자신의 봉지(封地)로 가서 은둔했다가, 여매의 아들 요(僚)가 즉위하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왕을 도와 정무를 처리하였다. 12년 후, 저번의 맏아들 공자 광(光)이 오왕 요(僚)를 죽이고,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으로 계찰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청하였지만, 계찰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며 광(光)을 엄중하게 꾸짖었다. 공자 광(光)이 즉위하자, 계찰은 자신의 봉지인 연릉(延陵)으로 돌아가, 다시는 조정에 돌아오지 않았다. 분류:오나라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