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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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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섭(玄永燮, 일본식 이름: 天野道夫, 1907년 ~ ?)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 인물이다. 교육자 출신으로 조선총독부의 관료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헌의 아들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그는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교토에서 노동 운동을 한 이력을 갖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상하이의 남화한인연맹에 가담했다. 백정기 등이 활동하고 있던 남화한인연맹에는 무정부주의 운동가인 원심창을 따라 가입했다고 하며, 이 조직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에 무정부주의 운동 때문에 잠시 투옥되었다가 출소한 현영섭은 내선일체를 위해 한국어를 전폐할 것을 주장하면서 극렬 친일파로 변신했다. 조선인이 주장하는 조선어 전폐론은 일본인들의 눈에 띄었고, 친일 단체인 녹기연맹(綠旗聯盟)에 기용되어 녹기연맹 기관지 《녹기》에 이같은 논리를 주장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전쟁 지원을 위한 강연에 가담하여 중국을 비난하거나 완전한 황민화를 통한 내선일체 구현과 대동아공영권 실현을 홍보하는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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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99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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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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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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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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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71990124
n7:
현영섭 :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 꿈꾼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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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섭(玄永燮, 일본식 이름: 天野道夫, 1907년 ~ ?)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 인물이다. 교육자 출신으로 조선총독부의 관료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헌의 아들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그는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교토에서 노동 운동을 한 이력을 갖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상하이의 남화한인연맹에 가담했다. 백정기 등이 활동하고 있던 남화한인연맹에는 무정부주의 운동가인 원심창을 따라 가입했다고 하며, 이 조직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에 무정부주의 운동 때문에 잠시 투옥되었다가 출소한 현영섭은 내선일체를 위해 한국어를 전폐할 것을 주장하면서 극렬 친일파로 변신했다. 조선인이 주장하는 조선어 전폐론은 일본인들의 눈에 띄었고, 친일 단체인 녹기연맹(綠旗聯盟)에 기용되어 녹기연맹 기관지 《녹기》에 이같은 논리를 주장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전쟁 지원을 위한 강연에 가담하여 중국을 비난하거나 완전한 황민화를 통한 내선일체 구현과 대동아공영권 실현을 홍보하는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특히 1938년과 1939년 출간한 논설집 《조선인이 나아가야 할 길(일본어: 朝鮮人の進むべき道)》과 《신생 조선의 출발(일본어: 新生朝鮮の出發)》은 이러한 논리의 결정체였다. 그는 일본의 문화와 제국주의를 예찬하면서 언어와 이름을 포함한 모든 생활 양식을 일본과 같게 하여 내선일체를 구현할 것을 주장했다. 민족주의자를 페스트에 비유하는 독설을 통해 지식인들에게 진심으로 일본을 사랑할 것을 주문한 이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주사를 거쳐 1940년 친일 출판사인 내선일체실천사의 이사가 되었고 황도학회의 이사도 맡아 태평양 전쟁 종전때까지 강연 활동을 통해 전쟁 지원을 계속했다. 광복 후 일본으로 피신한 뒤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