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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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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은 유요의 전조의 도읍이였다. 310년 유연이 죽고 장남 유화(劉和)가 제위를 물려받았으나, 인망이 없어 동생 초왕(楚王) 유총이 모반을 일으켰다. 유화를 살해하고 제위를 계승한 유총은 311년 서진의 수도 낙양을 함락시켜 회제(懷帝)를 사로잡았다.(영가(永嘉)의 난) 장안(長安)에서 민제(愍帝)가 즉위하여 저항하였으나 유총은 316년 장안을 함락하여 민제를 사로잡았다. 이로써 서진은 멸망하였으며 이때부터를 오호십육국 시대라고 부른다. 유총의 치세에 한은 화북 일대를 공격하여 세력을 확대하였다. 유요는 장안 방면으로 진출하여 옹주(雍州 : 산시 성(陝西省) 중남부)·진주(秦州 : 간쑤 성(甘肅省) 동부) 일대를 점령하였으며, 석륵은 하북(河北)과 병주 북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유총의 치세에 유요와 석륵이 점령한 지방은 사실상 독립적인 군벌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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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은 유요의 전조의 도읍이였다. 310년 유연이 죽고 장남 유화(劉和)가 제위를 물려받았으나, 인망이 없어 동생 초왕(楚王) 유총이 모반을 일으켰다. 유화를 살해하고 제위를 계승한 유총은 311년 서진의 수도 낙양을 함락시켜 회제(懷帝)를 사로잡았다.(영가(永嘉)의 난) 장안(長安)에서 민제(愍帝)가 즉위하여 저항하였으나 유총은 316년 장안을 함락하여 민제를 사로잡았다. 이로써 서진은 멸망하였으며 이때부터를 오호십육국 시대라고 부른다. 유총의 치세에 한은 화북 일대를 공격하여 세력을 확대하였다. 유요는 장안 방면으로 진출하여 옹주(雍州 : 산시 성(陝西省) 중남부)·진주(秦州 : 간쑤 성(甘肅省) 동부) 일대를 점령하였으며, 석륵은 하북(河北)과 병주 북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유총의 치세에 유요와 석륵이 점령한 지방은 사실상 독립적인 군벌화되었다. 318년 유총이 죽고 아들인 유찬(劉粲)이 뒤를 계승했으나 부하가 반란을 일으켜 유찬을 죽이고 유씨 일족을 몰살시켰다. 장안의 유요와 하북의 석륵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진하였으며, 유요는 죽은 유찬의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하고 석륵을 조공(趙公)에 봉하였다. 12월에 석륵이 평양을 점령하여 반란을 제압하였으나 319년에 유요가 석륵을 공격함으로써 유요와 석륵의 두 군벌은 공식적으로 결별하였다. 유요는 국호를 조(趙)로 고치고 모돈 선우의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으며, 석륵은 11월에 양국(襄?)에서 조왕으로 즉위하였다.(후조) 유요와 석륵은 화북을 양분하여 서로 대립하였으나 328년 석륵에게 포로로 사로잡혀 전조는 급격하게 쇠락하였다. 아들 유희(劉?)가 뒤를 이었으나 329년 석호(石虎)에 의해 살해당하였으며 이로써 전조는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