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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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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성(大興城)은 수나라의 수도였다. 수나라(隋 581-618)는 중국 남북조의 혼란기에 분열된 대륙을 300년 만인 589년에 통일한 왕조로서 수도는 대흥성으로, 개국 후 37년 만에 멸망한 나라이다. 장안과 낙양을 재건하는데 수문제는 북주의 수도 장안의 남동쪽에 대흥성(大興城)을 건축했다. 양제는 이를 서경으로 하고, 더욱이 하남성의 낙양에 동경(동도)을 조영하였다. 수나라는 남조 진나라를 명말시킨 이후에 수문제는 북제의 수도 장안의 남동쪽에, 한(漢:Han)의 장안성(長安:Changan城) 동쪽 지방에 새로운 도성(都城)인 대흥성(大?城)을 만들었다. 문제는 대흥성을 수축함과 동시에 위수가 모래가 많아 배가 다니기에 불편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성을 지은 사람은 서역 출신의 우문개(宇門愷)였다. 수양제(隋?帝)는 낙양에 동쪽 수도를 만듭니다. 이 둘을 합쳐서 양경(두 수도 ?京)라고 한다. 인구가 집중되고 수도 방위군이 주둔하며 중앙 정부가 있는 수도 대흥성(大興城: 당의 장안성)은많은 식량과 물자를 필요로 하는 소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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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성(大興城)은 수나라의 수도였다. 수나라(隋 581-618)는 중국 남북조의 혼란기에 분열된 대륙을 300년 만인 589년에 통일한 왕조로서 수도는 대흥성으로, 개국 후 37년 만에 멸망한 나라이다. 장안과 낙양을 재건하는데 수문제는 북주의 수도 장안의 남동쪽에 대흥성(大興城)을 건축했다. 양제는 이를 서경으로 하고, 더욱이 하남성의 낙양에 동경(동도)을 조영하였다. 수나라는 남조 진나라를 명말시킨 이후에 수문제는 북제의 수도 장안의 남동쪽에, 한(漢:Han)의 장안성(長安:Changan城) 동쪽 지방에 새로운 도성(都城)인 대흥성(大?城)을 만들었다. 문제는 대흥성을 수축함과 동시에 위수가 모래가 많아 배가 다니기에 불편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성을 지은 사람은 서역 출신의 우문개(宇門愷)였다. 수양제(隋?帝)는 낙양에 동쪽 수도를 만듭니다. 이 둘을 합쳐서 양경(두 수도 ?京)라고 한다. 인구가 집중되고 수도 방위군이 주둔하며 중앙 정부가 있는 수도 대흥성(大興城: 당의 장안성)은많은 식량과 물자를 필요로 하는 소비지였다. 617년은 뒷날 당나라의 시조가 되는 이연의 반란군이 수도 대흥성을 함락하고 허수아비 황제인 공제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