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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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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伏俟城) 또는 복사는 토욕혼의 수도였다. 칭하이 호의 서쪽에 있었으며, 부사(伏俟)라고 불렸다. 토욕혼은 원래는 선비족(鮮卑族) 모용부(慕容部)의 일파였으나, 서진(西晉) 영가연간(永嘉年間:307~312)에 수령 토욕혼이 부족을 거느리고 동북 도하(徒河)의 청산(靑山:지금의 랴오닝 성[遼寧省=랴오닝=遼寧, Liaoning, 요녕] 의현[義縣=만주(滿洲)의현(義縣) 북동쪽]을 떠나, 서쪽 칭하이[靑海]·간쑤[甘肅] 일대로 옮겨와 강족(羌族)과 함께 살았다. 후에 왕 과여(渟呂)는 토욕혼을 자신의 성(姓)으로 하고, 칭하이 호[靑海湖] 서쪽 연안의 복사성을 도읍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역사적 사실이다. 당대 초기에 토곡혼이 여러 차례에 걸쳐 당왕조의 변경을 침략하자, 635년에 당 태종(太宗)은 토곡혼을 정벌하였으며, 이때부터 토곡혼은 둘로 분열되었다. 서부의 토곡혼은 달연망결파(達延茫結波)가 통솔하여 선선(선善)에 정착하였다가 후에 토번(吐蕃) 정권에 항복하였다. 동부의 토곡번은 모용순(慕容順)이 통솔하여 복사성(伏俟城)에 정착하였으며 당왕조는 그를 서평군왕(西平郡王)에 봉하였다. 부사혈(府舍穴)은 부는 장부를 가리키며 사는 거처를 가리킨다. 소복 아래에 있어 장부의 원기가 저장된 거처와 같다 하여 부사라 이름하였다 참고로 족태음경, 음교맥, 궐음경의 회(모일회)이다. 부사혈의 위치는 충문혈 바깥쪽 위로 0.7치 되는 곳으로 임맥에서 옆으로 4치 되는 지점에서 혈위를 취한다. 충문(衝門, 2개 혈) 일명 자궁(慈宮)이라고도 하는데 위로 5치 올라가면 대횡혈이 있고 부사혈 아래에 있는 횡골의 양쪽 끝 가로간 금의 가운데 맥이 뛰는 곳에 있다. 1. * 넘겨주기 이도에서는 모든 부사가 e로 끝난다. 형용사를 부사로, 명사를 형용사로 등 어미만을 바꾸어 문장 내에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이도의 큰 장점이다. * alta - 높은 * alte - 높이, 높게 * alto - 높이, 높은 것 * trista - 슬픈 * triste -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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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에서는 모든 부사가 e로 끝난다. 형용사를 부사로, 명사를 형용사로 등 어미만을 바꾸어 문장 내에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이도의 큰 장점이다. * alta - 높은 * alte - 높이, 높게 * alto - 높이, 높은 것 * trista - 슬픈 * triste - 슬프게 부사혈(府舍穴)은 부는 장부를 가리키며 사는 거처를 가리킨다. 소복 아래에 있어 장부의 원기가 저장된 거처와 같다 하여 부사라 이름하였다 참고로 족태음경, 음교맥, 궐음경의 회(모일회)이다. 부사혈의 위치는 충문혈 바깥쪽 위로 0.7치 되는 곳으로 임맥에서 옆으로 4치 되는 지점에서 혈위를 취한다. 충문(衝門, 2개 혈) 일명 자궁(慈宮)이라고도 하는데 위로 5치 올라가면 대횡혈이 있고 부사혈 아래에 있는 횡골의 양쪽 끝 가로간 금의 가운데 맥이 뛰는 곳에 있다. 1. * 넘겨주기 부사(伏俟城) 또는 복사는 토욕혼의 수도였다. 칭하이 호의 서쪽에 있었으며, 부사(伏俟)라고 불렸다. 토욕혼은 원래는 선비족(鮮卑族) 모용부(慕容部)의 일파였으나, 서진(西晉) 영가연간(永嘉年間:307~312)에 수령 토욕혼이 부족을 거느리고 동북 도하(徒河)의 청산(靑山:지금의 랴오닝 성[遼寧省=랴오닝=遼寧, Liaoning, 요녕] 의현[義縣=만주(滿洲)의현(義縣) 북동쪽]을 떠나, 서쪽 칭하이[靑海]·간쑤[甘肅] 일대로 옮겨와 강족(羌族)과 함께 살았다. 후에 왕 과여(渟呂)는 토욕혼을 자신의 성(姓)으로 하고, 칭하이 호[靑海湖] 서쪽 연안의 복사성을 도읍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역사적 사실이다. 당대 초기에 토곡혼이 여러 차례에 걸쳐 당왕조의 변경을 침략하자, 635년에 당 태종(太宗)은 토곡혼을 정벌하였으며, 이때부터 토곡혼은 둘로 분열되었다. 서부의 토곡혼은 달연망결파(達延茫結波)가 통솔하여 선선(선善)에 정착하였다가 후에 토번(吐蕃) 정권에 항복하였다. 동부의 토곡번은 모용순(慕容順)이 통솔하여 복사성(伏俟城)에 정착하였으며 당왕조는 그를 서평군왕(西平郡王)에 봉하였다. 토곡혼(吐谷渾)이 변방에서 도적질을 하였다. 임금이 이정을 서해도 행군대총관(行軍大總管)으로 삼고, 임성왕 도종(任城王 道宗)·후군집(候君集)·이대량(李大亮)·이도언(李道彦)·고증생(高甑生)등 다섯 총관의 군대를 모두 정에게 예속시켰다. 군대가 복사성(伏俟城)에 주둔해 있을 때에 토곡혼이 그들의 풀 무더기를 다 불태우고 퇴각하여 대비천(大非川)에 보루를 쌓았다 분류:토욕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