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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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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燕)경후 통치 시기에 주나라에 광풍이 불었다. <사기 주본기="주본기">에 유왕(기원전 779년)이 괵석보(虢石父)를 경사(卿士)로 삼아 국정을 맡기자 백성들이 모두 원망하였다. 석보(石父)라는 위인(爲人)은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아첨에 능하고 재물을 탐하는 자였으나 유왕이 총애하여 국정을 맡겼다. 다시 신후(申后)를 폐하고 태자는 신국(申國)으로 쫓아 버리고 포사를 정비로 백복(伯服)을 태자로 세웠다. 신후(申侯)가 노하여 증국(繒國)과 서이(西夷)인 견융(犬戎)과 힘을 합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유왕을 공격하였다. 유왕이 봉화를 올려 구원병을 불렀으나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온 제후들은 한 명도 없었다. 결국은 유왕은 여산(驪山) 밑에서 죽고 포사는 사로잡혔다. 신후는 주나라의 부고에 있던 모든 재물들을 견융과 증국에 주어 그들의 군사들을 물러가게 하였다. 그런 다음 신후가 제후들과 상의하여 유왕의 태자였던 의구를 불러 주나라의 왕위를 잇게 하고 주나라 사직에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이가 평왕이다. 주유왕이 신국과 연합한 견융에게 무참히 주살되고, 신국과 제후들이 상의하여 유왕의 태자를 옹립하는데 이가 바로 주평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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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燕)경후 통치 시기에 주나라에 광풍이 불었다. <사기 주본기="주본기">에 유왕(기원전 779년)이 괵석보(虢石父)를 경사(卿士)로 삼아 국정을 맡기자 백성들이 모두 원망하였다. 석보(石父)라는 위인(爲人)은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아첨에 능하고 재물을 탐하는 자였으나 유왕이 총애하여 국정을 맡겼다. 다시 신후(申后)를 폐하고 태자는 신국(申國)으로 쫓아 버리고 포사를 정비로 백복(伯服)을 태자로 세웠다. 신후(申侯)가 노하여 증국(繒國)과 서이(西夷)인 견융(犬戎)과 힘을 합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유왕을 공격하였다. 유왕이 봉화를 올려 구원병을 불렀으나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온 제후들은 한 명도 없었다. 결국은 유왕은 여산(驪山) 밑에서 죽고 포사는 사로잡혔다. 신후는 주나라의 부고에 있던 모든 재물들을 견융과 증국에 주어 그들의 군사들을 물러가게 하였다. 그런 다음 신후가 제후들과 상의하여 유왕의 태자였던 의구를 불러 주나라의 왕위를 잇게 하고 주나라 사직에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이가 평왕이다. 주유왕이 신국과 연합한 견융에게 무참히 주살되고, 신국과 제후들이 상의하여 유왕의 태자를 옹립하는데 이가 바로 주평왕이다. <사기 주본기="주본기">에 주평왕이 즉위했으나 주나라 도읍인 종주는 견융의 침입으로 모두 폐허가 되고 또한 견융이 부단히 침략해 왔음으로 이를 피하여 도읍을 락읍(駱邑)으로 옮겼다. 주나라는 평왕 때에 이르러 더욱 쇠락(衰落)하기 시작했으며 세력이 센 제후들은 세력이 약한 주위의 제후들을 공격하여 병합하기 시작하여 제(齊), 초(楚), 진(晉), 진(秦)등이 방백이 되어 주왕실의 정사를 오로지 하였다. 이 시기에 중요한 3가지 정세의 변화가 찾아오는데, 진(秦)이 제후의 반열에 올랐고 주나라의 도읍을 종주에서 낙읍으로 옮긴 것이다. 주나라 도읍이 낙읍으로 이동하면서 그 위치에 있던 연(燕)의 봉지와 겹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연(燕)의 지배 세력은 낙양 북쪽 황하가에 위치한 온(溫) 땅으로 옮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 연(燕)경후가 죽고 연(燕)애후가 옹립 되지만 2년만에 죽고 연(燕)정후가 옹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