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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공왕 (共王) 웅심(熊審)은 초나라의 군주( 재위: 기원전 590년- 기원전 560년)이다. 그는 초장왕의 장자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공왕(共王)이 하루는 사냥을 나갔다가 초나라의 국보인 활을 잃어버렸다. 이에 신하들이 당황하여 곧 가서 활을 찾아오겠다고 말하자, 공왕은 "그냥 두어라! 초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으니 초나라의 누군가가 주워가겠지"(楚人遺弓, 楚人得之) 그렇게 말하고는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하여 초나라 왕은 도량이 매우 넓은 인물로 인식되었고 후세에까지 칭송이 자자했다. 주간왕 11년 기원전 575년, 당진의 공격을 받은 정나라가 초에 구원을 요청하자 그는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다. 기원전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당진과 초가 언릉에서 조우하여 싸웠으나 초군 대장 공자측의 과음으로 인해 크게 패하고 장왕이 이룩한 패권을 잃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비운을 맞이했다. 장군 자반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그 이후 초나라는 패자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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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공왕 (共王) 웅심(熊審)은 초나라의 군주( 재위: 기원전 590년- 기원전 560년)이다. 그는 초장왕의 장자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공왕(共王)이 하루는 사냥을 나갔다가 초나라의 국보인 활을 잃어버렸다. 이에 신하들이 당황하여 곧 가서 활을 찾아오겠다고 말하자, 공왕은 "그냥 두어라! 초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으니 초나라의 누군가가 주워가겠지"(楚人遺弓, 楚人得之) 그렇게 말하고는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하여 초나라 왕은 도량이 매우 넓은 인물로 인식되었고 후세에까지 칭송이 자자했다. 주간왕 11년 기원전 575년, 당진의 공격을 받은 정나라가 초에 구원을 요청하자 그는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다. 기원전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당진과 초가 언릉에서 조우하여 싸웠으나 초군 대장 공자측의 과음으로 인해 크게 패하고 장왕이 이룩한 패권을 잃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비운을 맞이했다. 장군 자반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그 이후 초나라는 패자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분류:초나라의 군주 분류:공왕 초공왕 (共王) 웅심(熊審)은 초나라의 군주( 재위: 기원전 590년- 기원전 560년)이다. 그는 초장왕의 장자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공왕(共王)이 하루는 사냥을 나갔다가 초나라의 국보인 활을 잃어버렸다. 이에 신하들이 당황하여 곧 가서 활을 찾아오겠다고 말하자, 공왕은 "그냥 두어라! 초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으니 초나라의 누군가가 주워가겠지"(楚人遺弓, 楚人得之) 그렇게 말하고는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하여 초나라 왕은 도량이 매우 넓은 인물로 인식되었고 후세에까지 칭송이 자자했다. 주간왕 11년 기원전 575년, 당진의 공격을 받은 정나라가 초에 구원을 요청하자 그는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다. 기원전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당진과 초가 언릉에서 조우하여 싸웠으나 초군 대장 공자측의 과음으로 인해 크게 패하고 장왕이 이룩한 패권을 잃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비운을 맞이했다. 장군 자반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그 이후 초나라는 패자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