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HTML5 document contains 11 embedded RDF statements represented using HTML+Microdata notation.

The embedded RDF content will be recognized by any processor of HTML5 Microdata.

PrefixNamespace IRI
n5http://dbkwik.webdatacommons.org/ontology/
dctermshttp://purl.org/dc/terms/
n8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rifG0gLX0jN6meg952sbjw==
n13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POiLpAUwZq1vHL63usVMCg==
n9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Mvu7WVdFNuwopece35oPQg==
n12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sA1KnL5BeW4O4g08ZaDx7Q==
n14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A6FwoS-MMHHjVRjwcb9dFw==
n7http://dbkwik.webdatacommons.org/ko.history/property/
rdfshttp://www.w3.org/2000/01/rdf-schema#
n2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kldw_YvvKcNUR_p5uckKnA==
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n11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I3xz3fLLQuvRMh6--QWF5A==
n6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nb1VmliRPGODJ__wr2mJPg==
n4http://dbkwik.webdatacommons.org/resource/tOiCC0R-Rn2Eo6Dx_lnC8g==
xsdhhttp://www.w3.org/2001/XMLSchema#
Subject Item
n2:
rdfs:label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rdfs:comment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Severus Alexander,Alexander Severus라고도 함. 정식 이름은 Marcus Aurelius Severus Alexander. 본명은 Gessius Bassianus Alexianus, Alexianus Bassianus(?). 208 페니키아(지금의 레바논에 있음)~ 235 갈리아]는 로마 황제(222~235 재위)이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부인 율리아 돔나의 여동생 율리아 마이사의 외손자인 그의 나약한 지배체제는 내란으로 무너졌으며, 그뒤 50년 동안 로마는 혼란에 빠졌다. 외할머니 율리아 마이사가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3~211 재위)의 처제였다. 218년 시리아 주둔 레기온(군단)은 14세밖에 안 된 알렉산데르의 사촌 엘라가발루스(헬리오가발루스)를 황제로 선포했으며 221년에는 그를 설득해 알렉산데르를 후계자로 삼게 했다. 엘라가발루스 황제는 카라칼라보다도 더 칼리굴라와 네로를 닮은 자였다. 성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다. 1. * 넘겨주기
dcterms:subject
n4: n6: n9: n11: n13: n14:
n7:wikiPageUsesTemplate
n8: n12:
n5:abstract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Severus Alexander,Alexander Severus라고도 함. 정식 이름은 Marcus Aurelius Severus Alexander. 본명은 Gessius Bassianus Alexianus, Alexianus Bassianus(?). 208 페니키아(지금의 레바논에 있음)~ 235 갈리아]는 로마 황제(222~235 재위)이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부인 율리아 돔나의 여동생 율리아 마이사의 외손자인 그의 나약한 지배체제는 내란으로 무너졌으며, 그뒤 50년 동안 로마는 혼란에 빠졌다. 외할머니 율리아 마이사가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3~211 재위)의 처제였다. 218년 시리아 주둔 레기온(군단)은 14세밖에 안 된 알렉산데르의 사촌 엘라가발루스(헬리오가발루스)를 황제로 선포했으며 221년에는 그를 설득해 알렉산데르를 후계자로 삼게 했다. 엘라가발루스 황제는 카라칼라보다도 더 칼리굴라와 네로를 닮은 자였다. 222년 3월 황실 근위대는 엘라가발루스를 살해했는데 이는 아마도 율리아 마이사와 알렉산데르의 어머니 율리아 마마이아의 사주를 받은 듯하다. 뒤이어 알렉산데르는 무사히 왕위에 올랐다. 그가 재위하는 동안 실권은 외할머니(226 죽음)와 어머니가 쥐고 있었다. 16명의 원로원 의원으로 섭정회의가 구성되었으나 원로원은 명목상 지배권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의 정권 아래 민간인과 군인들은 로마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많은 지역이 무법상태에 빠져들어갔다. 심지어 황실 근위대는 황제와 그의 어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국가최고 장관이자 그들의 지휘관이었던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를 살해하기도 했다(228).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게 파멸을 가져온 요인은 군 지휘에 무능했다는 점이었다. 230~231년 페르시아의 아르다시르 1세가 로마의 메소포타미아 속주(지금의 이라크에 있음)를 침입하자 알렉산데르는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반격했으나(232) 그가 직접 지휘하던 군대가 진격에 실패해 패배했다. 그러나 페르시아군은 큰 손실을 입어 메소포타미아에서 철수해야 했으므로 알렉산데르는 233년 로마에서 개선식을 개최할 구실을 얻었다. 그뒤 곧 게르만계 알레만니족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라인 강 지방(지금의 독일 마인츠)으로 갔다. 그러나 어머니의 충고에 따라 게르만족을 돈으로 매수해 평화조약을 맺으려 하다가 군대의 분노를 샀다. 235년초 군인들은 그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를 황제로 선포했다. 성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다. 1. * 넘겨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