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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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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獻宗, 1084년~1097년)은 고려 제14대 군주(재위: 1094년~1095년)이다. 휘는 욱(昱), 묘호와 시호는 헌종공상정비회효대왕(獻宗恭殤定比懷孝大王). 선종(宣宗)의 원자(元子)로 어머니는 사숙태후(思肅太后) 이씨이다. 즉위 초에는 어린 나이에 병약하여 사숙태후가 섭정하였다. 이자의(李資義)의 난은 고려 13대왕 선종(宣宗)이 재위 1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병약한 몸에다 당시 11세밖에 안 된 어린 나이의 헌종(獻宗)이 즉위하면서 싹이 트게 된다. 진평왕 때는 용 그림을 그려놓고 비를 기다리는 화룡제를 지냈으며, 고려 헌종은 흙으로 용의 형상을 만들어 토룡제를 지냈다. 또, 조선시대에는 오해와 오강을 정하여 용신제를 지냈다. 고려 헌종 2년 때(1011년), 북방 민족인 거란이 고려에 쳐들어오자, 부처님의 힘으로 외란을 극복하자는 낙안읍성은 파지성, 분차, 분사라고 불렸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낙안군(양악)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 헌종9년(1018)에 나주부로 소속되었다. 지리산 문창대의 "文昌" 은 선생이 지리산에 모습을 감춘뒤 고려 헌종이 문창후(文昌候) 라 시호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1. * 넘겨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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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獻宗, 1084년~1097년)은 고려 제14대 군주(재위: 1094년~1095년)이다. 휘는 욱(昱), 묘호와 시호는 헌종공상정비회효대왕(獻宗恭殤定比懷孝大王). 선종(宣宗)의 원자(元子)로 어머니는 사숙태후(思肅太后) 이씨이다. 즉위 초에는 어린 나이에 병약하여 사숙태후가 섭정하였다. 이자의(李資義)의 난은 고려 13대왕 선종(宣宗)이 재위 1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병약한 몸에다 당시 11세밖에 안 된 어린 나이의 헌종(獻宗)이 즉위하면서 싹이 트게 된다. 진평왕 때는 용 그림을 그려놓고 비를 기다리는 화룡제를 지냈으며, 고려 헌종은 흙으로 용의 형상을 만들어 토룡제를 지냈다. 또, 조선시대에는 오해와 오강을 정하여 용신제를 지냈다. 고려 헌종 2년 때(1011년), 북방 민족인 거란이 고려에 쳐들어오자, 부처님의 힘으로 외란을 극복하자는 낙안읍성은 파지성, 분차, 분사라고 불렸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낙안군(양악)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 헌종9년(1018)에 나주부로 소속되었다. 지리산 문창대의 "文昌" 은 선생이 지리산에 모습을 감춘뒤 고려 헌종이 문창후(文昌候) 라 시호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1. * 넘겨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