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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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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옥(具滋玉, 1890년 ~ 1950년?)은 일제 강점기의 기독교계 인물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기도 출신이며 서양화가 구본웅의 숙부이다. 1925년 흥업구락부 결성에 참가했다. 흥업구락부는 서울과 경기 지방의 기독교계 지도자들인 이상재, 윤치호, 신흥우, 이갑성, 유억겸 등이 이승만 노선에 따라 조직한 것으로, 조선기독교청년회(YMCA)와 감리교 교회를 중심으로 온건한 민족주의 운동을 벌이다가 1927년 일찍 사망한 이상재를 제외하고는 광복 전 다양한 시기에 변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구자옥도 1938년 발생한 흥업구락부 사건을 계기로 전향하여 황도학회에 참여했고, 1944년 《매일신보》에 〈필승은 신의 명령〉이라는 제목의 논설을 기고하여 태평양 전쟁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전쟁 지원을 촉구하는 등 친일 활동을 했다. 임전대책협의회와 경성정동연맹 등 친일 단체에도 가담했다. 광복 직후 백남훈, 김도연, 허정, 장덕수 등과 함께 정치 세력을 형성한 뒤 우익 세력 연합으로 한국민주당을 창당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미군정 시기에 초대 경기도 도지사를 맡았다. 당시 YMCA에서는 증경 총무를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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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옥(具滋玉, 1890년 ~ 1950년?)은 일제 강점기의 기독교계 인물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기도 출신이며 서양화가 구본웅의 숙부이다. 1925년 흥업구락부 결성에 참가했다. 흥업구락부는 서울과 경기 지방의 기독교계 지도자들인 이상재, 윤치호, 신흥우, 이갑성, 유억겸 등이 이승만 노선에 따라 조직한 것으로, 조선기독교청년회(YMCA)와 감리교 교회를 중심으로 온건한 민족주의 운동을 벌이다가 1927년 일찍 사망한 이상재를 제외하고는 광복 전 다양한 시기에 변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구자옥도 1938년 발생한 흥업구락부 사건을 계기로 전향하여 황도학회에 참여했고, 1944년 《매일신보》에 〈필승은 신의 명령〉이라는 제목의 논설을 기고하여 태평양 전쟁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전쟁 지원을 촉구하는 등 친일 활동을 했다. 임전대책협의회와 경성정동연맹 등 친일 단체에도 가담했다. 광복 직후 백남훈, 김도연, 허정, 장덕수 등과 함께 정치 세력을 형성한 뒤 우익 세력 연합으로 한국민주당을 창당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미군정 시기에 초대 경기도 도지사를 맡았다. 당시 YMCA에서는 증경 총무를 맡고 있었다. 경기도 지사 재임 중이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북조선으로 갔다. 전쟁 초기 대통령 이승만이 비밀리에 피신할 때 도지사와 경찰 간부들도 대부분 몸을 피했으나 도지사 가운데 구자옥만이 서울에서 피랍되었다. 북행길에 강계 부근에서 사망했다는 증언이 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종교 부문 중 기독교계 인물로 포함되었다.